박승호(2004-03-19 20:50:08, Hit : 3499, Vote : 761
 화포

172.화포
14세기 전반 화약과 화포가 중국에서 고려에 전래되었다. 고려사 병지 (兵志) 에는 1356년(공민왕 5년)에 총통(銃筒)을 사용하여 화살을 발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그때 이미 유통식 (有筒式) 화기 (火器)를 고려사람들이 쓸 줄 알았다는 것을 말한다. 이 총통은 원 (元)나라에서 가져온 것으로 생각된다. 총통으로 발사한 화살은 사정 거리가 매우 멀었고 그 위력도 대단했다. 이러한 화약병기의 위력을 인식한 고려에서는 화포의 대량생산과 화약의 제조 비법을 알아내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러나 그것은 중국에서 극비로 하는 최첨단 기술이었다. 중국에서는 화약과 화약병기를 조금 고려에 주기는 했으나 고려에서 그것을 자체 생산하도록 기초를 가르쳐 주지는 않았다. 화약병기는 그 무렵 고려 전역으로 피해가 확대되어가던 왜구를 섬멸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무기였다. 그러나 고려에서는 화약의 제조비법을 알아내지 못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리하여 1313년 11월에는 할 수 없이 명 (明)에 사신을 보내서 화약을 나누어 달라고 요청하였다. 고려의 요청을 명나라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처음에 일단 거절하던 명에서도 왜구의 극심한 피해 때문에 고심하던 차였으므로, 다음해인 1374년 5월에는 명태조의 특별지시로 나누어 줄 것을 허가했다
그래서 얻어온 것이 염초 50근, 황 10만근과 그밖에 필요한 약품들이었다그러나 그것도 생색만 냈을 뿐 흑색화약의 원료중 하나였던 황을 받은것이나 다를바 없었다. 염초 50근으로는 얼마 안 되는 화약을 만들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최무선(崔茂宣)이다. 화약 제조를 위한 그의 노력은 이러한 사회적, 군사적 정세를 배경으로 하여 경주된 것이다. 그는 화약병기의 사용만이 왜구 섬멸의 가장 효과적인 대응책이라 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화약제조의 비법은 최무선의 오랜 노력에도 불구하고 잘 풀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중국인 이원(李元)의 도움으로 염초 자취술을 익혀서 그 당시 중국의 국가적 최고기밀인 화약제조의 비법을 완전히 알아내게 되었다. 그는 화약의 주원료인 염초, 즉 질산칼륨을 흙에서 추출하는 방법을 실험에 실험을 거듭한 끝에 스스로 해결한 것이다. 그러나 고려왕조는 화약과 화포의 제조에 선뜻 나서지 않았다. 최무선은 고려정부에 여러번 건의했다. 화통도감(大通都監)을 설치하기까지 그는 무던히 애썼다 그리하여 화약과 화포 제조소로서의 정부 공식기관인 화통도감이 1377년 10월에 정식으로 발족하게 되었다. 화통도감의 발족과 함께 화약과 각종 화기의 제조는 크게 활기를 띠고 급속도로 발전하였다. 얼마 후에는 대장군포, 이장 군포 등의 중화기를 포함한 20종 가까운 화기(火器)가 제조되었다. 그리고 화통방사군(火筒放射軍)이 화기 발사전문부대로 편성되기도 했다. 또 전선에도 화포를 설치하는 획기적인 시도가 이루어졌다. 화포를 장비한 고려 전선, 이것은 중화기로 무장한 근대적 전투 함정의 선구였다. 그 막강한 화력이 왜구를 섬멸하는데 큰 위력을 발휘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대포를 쏘아대며 달려드는, 불을 뿜는 전함을 보고 왜구는 간담이 서늘해서 도주했다고 기록은 전한다. 최무선에 대한 여러 가지 기록을 종합해 보면 그는 화포의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 원 (元)나라에 잤었다고 한다. 14세기 전반기에 화약과 화포의 기술을 가진 유일한 나라인 중국에 가서 그 기술을 직접 배우고 온 것이다. 고려말에 제조된 초기의 화포는 탄환 종류를 쏘아 적을 살상하거나 목표물을 파괴하는 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주로 화살을 쏘아 목표물을 불태우는 화공에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발사물에는 주로 화전 즉 불화살이 쓰였고 다음으로 철탄자가 사용되었다. 초기의 철탄자는 발사력이 약해서 별로 사용되지 않았다. 그렇긴 하지만 화포의 위력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그래서
「태조실록」에는 그 위력을 '보는 사람은 경탄해마지 않았다-고 표현하고 있다. 1395년 (태조)4월, 최무선의 죽음을 기록한 「태조실록」의 기사는 최무선의 일생을 요약하면서 그것은 화약과 화약병기의 제조로 나라 에 크게 기여한 훌륭한 생애였다고 칭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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