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호(2004-03-11 09:20:00, Hit : 3142, Vote : 889
 가야금

7.가야금
가얏고라고도 한다. 오동나무 공명반에 명주실을 꼬아서 만든 12 줄을 세로로 매어 각 줄마다 안족(雁足:기러기발)을 받쳐놓고 손가락으로 뜯어서 소리를 낸다. 줄풍류를 비롯하여 가곡반주 ·가야금산조 ·가야금병창 등 한국음악 전반에 걸쳐 사용되고 있다. 청아하고 부드러운 음색으로 현재 가장 대중화되어 있다.
【연혁】 《삼국사기》에 가야금은 가야국(伽倻國)의 가실왕(嘉實王)이 당나라의 악기를 보고 만들었다고 하나 가실왕 이전인 신라 자비왕(慈悲王:재위 458~479) 때 백결선생(百結先生)이 금(琴)을 쳤다는 기록이 있고, 《삼국유사》에는 신라 내해왕(奈解王:재위 196~230) 때 물계자(勿稽子)가 금을 쳤다는 기록도 있다. 이 밖에 최근 경주시 황남동(皇南洞) 능원(陵園) 경내 폐고분에서 발굴된 토기 장경호(長頸壺)의 목부분에 새겨진 가야금의 주악도(奏樂圖)를 신라 미추왕릉(味鄒王陵)의 것으로 추정한다면, 가야금의 연대는 3 세기 초로 소급된다. 이상과 같은 문헌과 토기로 보아 가야금은 3 세기경 가실왕이 중국의 쟁(箏)을 본떠서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552년 가야국이 어지러워지자 악사 우륵(于勒)은 가야금을 들고 신라 진흥왕에게 투항하였다. 이때 진흥왕은 그를 받아들여 국원(國原:현 忠州)에 자리잡게 하고, 대내마(大奈麻)인 법지(法知)와 계고(階古), 대사(大舍)인 만덕(萬德)을 제자로 삼게 하여 그 업을 전수하게 하였다. 그 후 가야금은 노래와 춤의 반주악기로 사용되었으며, 고구려 ·백제의 것과는 다른 가야금이 사용된 독특한 신라음악을 낳게 하였다. 통일신라시대 이후 가야금은 삼현삼죽(三絃三竹:가야금 ·거문고 ·향비파 ·대금 ·중금 ·소금)의 관현합주로 확대되었고, 그 전통은 조선 성종(成宗) 때까지 이어졌다. 오늘날 연주되고 있는 줄풍류를 비롯하여 가곡반주 등의 악기인 거문고 ·대금 ·피리 ·해금 ·장구와는 조선 후기부터 함께 편성되었다. 그리고 충청도와 경기도 남부지역에서 연주되던 시나위(또는 心房曲)와 이 시나위에 판소리가락을 도입하여 만든 산조(散調)음악도 이때부터 연주되기 시작하였다.
【종류 ·구조】 가야금에는 정악을 연주하기 위한 정악가야금(正樂伽倻琴:法琴)과 민속악 및 산조를 연주하기 위한 산조가야금의 두 가지가 있다. 법금은 신라 때부터 있어 온 원형의 것이며 산조가야금은 산조와 민속악의 연주를 위하여 조선 후기에 개량된 가야금이다. 이 2 종류의 가야금은 구조에 있어서는 거의 같으나 크기 ·음역 ·음색 및 연주하는 법은 서로 다르다. 즉 법금은 통오동나무의 속을 파서 앞면은 볼록하게 배가 나오고 뒷면은 편평하게 만든 것으로 길이 약 165 cm, 너비는 36 cm 가량이다. 산조가야금은 앞판은 오동나무, 뒤판은 밤나무로 만들며 길이 약 150 cm, 너비는 21 cm 정도로 법금보다 작다. 따라서 줄 사이의 간격도 법금이 보다 넓은 편이다. 줄의 굵기 및 안족의 크기도 법금이 약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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